모터쇼와 P&I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자동차나 사진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쉽게 떠올리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근사한 전시물을 벗어난 군상의 시선과 카메라가 온종일 일관되게 향하는 또 다른 대상은 모델들이다. 우아미, 세련미, 개성미 등 기업이 선택한 이미지를 대변하는 여성들은 태양으로 높이 뜨고, 육중한 장비에 묶인 아마추어들은 해바라기를 자처하는 진풍경이 부스마다 펼쳐지는 곳이 모터쇼와 P&I이다. 

두 행사 모두 규모와 내용면에서 최신의, 그리고 최대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제품 홍보와 수요 창출이라는 단기적 목표는 물론, 기업정체성을 전달하고 소비의 방향과 기술의 흐름을 선도하기 위한 전략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많은 관람객들이 저마다의 관심거리를 찾아 다니는 모습에서는 취향과 취미, 필수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하지만, 인상적이어야 하기에 때론 파격도 마다 않는 'SHOW'는 흔하다. 사진기라는 흔하디 흔한 도구로 흔하지 않은 사진을 남기려면 행간을 읽고자 하는 눈을 가져야 하며, 같은 곳에서 다른 것을 보고자 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그림이나 사진을 액자라는 틀에 넣었을 때 작품에는 담기지 않은 작가의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전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기업이 선택하는 방법과 형식 속에는 은연중에 그들의 가치관이 스며 있다. 따라서 전시장 어딘가에는 간판과 제품에 가려진 기업의 속내를 보여 주는 특별부록이 놓여 있기 마련이다.

 

 

 

 

2012 P&I에 참가한 모 메이커의 홍보관이다. 방수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열대어를 가둬 둔 수족관에 카메라를 담궈 보는 이벤트를 열고 있었다. 형광 도료까지 덧칠된 생명체를 촬영하는 '많지 않은' 관람객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음이 안타까웠다. 

 

 

 

 

동종의 기능을 추구하는 타 메이커의 부스이다. 어항 속에 물고기가 없다. 대신 모니터 속의 잠수부가 제품을 홍보한다. 해저를 즐기는 다이버는 동일시의 대상으로 삼기에도 충분한 매력이 있다. 

 

 

 

 

환경을 이야기하는 기업은 인상 깊게도 단 한 곳이 있었다. 소비자로서도 LOHAS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유행어가 아닌 생존 기호가 되어야 한다. 동물행동학자 최재천님의 저서「인간과 동물」마지막 쪽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 있다.

 

 

우리는 다른 동물과 다르지만, 그동안 생각해 온 것처럼 그렇게 많이 다른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긴 지구의 역사를 통해서 살아남은 하나의 생물일 뿐입니다. 이 지구가 우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 존재했던 건 절대 아닙니다. 기나긴 진화의 역사 속에서 어쩌다 보니 우리처럼 신기한 동물이 탄생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하버드대학의 고생물학자 Stephen Jay Gould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구의 역사를 기록 영화로 만들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만들기로 했을 때 맨 마지막 장면에 인간이 주인공으로 다시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는 단호하게 0이라고 답합니다.

이렇듯 우리 삶은 우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우연히 태어난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도 지구의 역사를 하루로 본다면 태어난 지 몇 초밖에 안 되는 동물입니다. 게다가 몇 초만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많은 생물학자들의 생각입니다. 가장 짧고 굵게 살다간 종으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구의 역사와 생명의 본질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자연을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알고 배우다 보면 우리 자신을 더 사랑하고 다른 동물이나 식물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밖에 없는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기획의 초청장으로 교부 받은 입장권에 일반 관람객임을 알리는 'VISITOR'가 인쇄되어 있다. '인간'을 뜻하는 단어로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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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쌈지길에 있는 소품 가게,「예술로 만든 선물」

 

 

 

별을 따다, 달을 따다, 꽃을 따다... 발상이 예쁘다.

 

 

 

오월의 첫째 일요일에는 인사동 좋아하는 친구와 쌈지길부터 황학동 도깨비시장까지 봄볕 실컷 쬐고 돌아왔다. 한가로움이 물결처럼 흐르는 거리가 참 좋았다.

사진 속 금속 글자들은 쌈지길 2층에 있는「예술로 만든 선물」에서 본 병따개이다. 병마개를 따는 일상과 별, 달, 꽃을 맺어 주는 도구가 있다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곳은 소품화한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곳으로 이철수님의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이철수님은 손끝이 거름이라는 농사일 틈틈이 찍으신 목판화를 '나뭇잎편지[각주:1]'로 함께 나누는 행동가이기도 하다. 스마트폰과 키보드를 놓지 못 하는 모자이크족들에게 점, 선, 면이 들려주는 생명의 이야기들은 우산 위에 듣는 빗방울 같은 울림이 있다.  

 

 

 

이철수의 집 초기 화면

 

http://www.mokpan.com

 

 

 

 

20일부터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1. '이철수의 집' 회원으로 가입하면 하루 한 통의 판화가 배달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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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은 고개를 들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천문 현상에 관심 가진 사람치고 '우주쇼다, 다시 만나기 어렵다'와 같은 홈쇼핑식 표현을 동원하는 매체의 부추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언제나, 어디에나 '다른' 사람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사진이 있다. 아래는 Flickr에 just sof님이 올린 bokeh로서, 부분일식이 일어날 때 이러한 형태의 bokeh가 생긴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였다. 

볼수록 경이롭고 허를 찔린 느낌이다. 까마득한 하늘을 바라보느라 발 아래 일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구나.

 

   

 

 

 

http://www.flickr.com/photos/jsoffer/sets/72157629823737190/with/723866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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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5D mark 3, EF 17-40mm F4L USM, B+W ND10000, 5분 간격 촬영

 

 

 

 

 

 

 

 

 

 

첫 번째 사진이 '디렉터스 컷'이라면, 위 사진은 '일반판'이다. 

 

 

 

 

 사전 답사를 하지 않았고,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까닭에 계획한 시간에 촬영을 시작하지 못하였다. 결과는 일식 직전의 온전한 태양이 생략된 사진으로 남았다. Thorndike의 시행착오는 우연을 기반으로 하지만, 필자의 시행착오는 습관에 기인한다. 그래도, 시도와 반성은 다다익선이 아니겠는가?

 오래 전부터 북한산을 배경으로 하는 별 풍경 사진을 꼭 찍어보고 싶었다. 서울이라는 광해 공장이 마음에 걸리지만, 장엄함을 이야기하는 사진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기에 먼발치의 인수봉과 백운대를 바라보는 두 눈은 늘 카메라와 렌즈가 되곤 했었다. 부분일식 사진이 그 시작이 되었으니 유시유종하여야겠다.

 상단 사진은 태양과 달의 거대한 조우를 소재로 민들레의 갓털을 표현하였다. 밤이 되면 오므라지는 민들레꽃은 천체의 운동에 반응하는 생명체를 그려 내기에 더없이 훌륭한 피사체이기도 하다. 별과 생명, 하늘과 땅, 아름다움과 쉼... 담고 싶고, 닮고 싶은 게 참 많은 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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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7일, 춘천시 남산면 강촌리, OLYMPUS μ TOUGH-8010


지난 겨울, 절친한 선배와 검봉산에 올랐다. 기차가 들르던 강촌역과 전철이 오가는 강촌역 사이에 자리하며, 검봉이라고도 부른다. 수수한 산세에도 불구하고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조망 덕에 이름이 알려진 산이다. 
시간 맞출 일 없이 올라탄 하행 전철 안에서는 쉬이 달라지는 세상을 이야기했지만, 볼수록 낯설어지는 강촌을 떠나올 때는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 강촌에 처음 가 본 건 고교 2학년 겨울방학 때의 일이다. 불현듯 기차가 타고 싶었고, 성북역과 경춘선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학교 체육복 바지에 이랜드 잠바 차림으로 홀로 다녀왔었다. 강촌이란 낯선 곳을 그저 한 바퀴 돌아보며 '시골이구나' 생각한 것이 전부였던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추억으로 남았다.
학부생에게는 통과 의례였던 강촌행 MT와 '람보 민박'[각주:1], 그리고 강촌역 아래 라이브 까페 '윌'을 떠올려 본다. 그곳들이야 태생이 외지인들을 위한 공간이었으니 화려함을 쫓는 시류를 거스르지 못하고 사라졌지만, 사진 속의 이발관처럼 강촌을 터전으로 삼아 온 이들의 자리조차 떠밀리는 모습은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들도 다를 수 없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발관도, 강가의 마을도 그 이름이 가엾다. 강촌, 자본의 입맛에 따라 이마저 RIVER TOWN류의 경박을 분칠하는 패착은 두고두고 없기를 바란다.   


  

  1. 온통 분홍색 페인트로 칠해 놓은 모르타르 외벽이 촌스럽기도 하고 도발적이기도 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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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별

별꽂이 2012. 4. 22. 23:55

 

 

 

 

                                                  사람의 눈, 귀, 가슴들은
                                                  대부분 지독한 최면에 걸려있거나
                                                  강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자아의 깊은 늪에 빠져
                                                  세계를 전혀 모른 채로 늙어간다
                                                  그런 눈과 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나처럼 우주인이 되면 된다

                                                 

                                                  조영찬님의 시 01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
                                                  밤에도 태양은 우리 발 아래쪽에서 불을 뿜고 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의 시력이나 청력이라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주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그들은 주인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조영찬님의 시 02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하여
                                                  잠시 눈을 감고 있는 거다
                                                  가장 참된 것을 듣기 위하여
                                                  잠시 귀를 닫고 있는 거다
                                                  가장 진실한 말을 하기 위하여
                                                  잠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다

                                                 

                                                  조영찬님의 시 03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다니는 동물은 무엇인가? 상식이 되어 버린 질문,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이다. 아다시피 답은 사람이지만, 이 오랜 은유 속에는 교훈이 한 가지 담겨 있다. 누구도 내려놓을 수 없는 세월의 멍에는 하릴없이 우리들의 육체를 쇠하게 하고, 결국 모두는 장애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가르침을 에두른다.

육체적 장애의 유무는 우연에서 필연으로 귀결되는 과정이다. 이상적 완전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영혼의 불완전함이 우리들의 눈을 가릴 뿐이다.

온난화를 걱정하는 지구인 위에, 냉대에 아파하는 우주인들이 있다. 결국 따라가야 할 궤도에 먼저 파견된 동료들이다. 퍼뜩 정신 차리고 우주를 바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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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vimeo.com/dustinfarrell/videos


게재한 갈무리 화면은 미국의 동영상 공유 사이트 vimeo에 올라와 있는 Dustin Farrell의 time lapse 영상들이다. 상용(商用) 영상 작가인 그의 작품들은 서사와 서정의 조화가 주는 강렬함이 일품이며, 지구의 자전에 따른 별들의 일주운동이라는 웅대한 움직임을 담아내는데 있어 time lapse 기법이 가진 가치를 잘 보여 준다.   
그가 소개하는 조리개 고정 노하우[각주:1]도 매우 유용할 듯하다. 하지만, 촬영을 마쳤을 때 렌즈를 완전히 마운트해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깜박한다면 아차하는 순간 가슴을 치게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1. The lens twist metho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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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박물관은 봄이 흐르는 곳, 춘천에 있다.
한 시대의 문화는 대중의 관심과 인식에 상응하는 내력과 자취를 남기며,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창조의 방향을 제시한다.  

 

박물관, 도서관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그 둘은 뿌리와 잎새의 관계이다.

 

창작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놓은 스톱모션 스튜디오

 

1968년 개봉된 '우주의 왕자 황금철인'. 2년 뒤 태어난 필자에게는 기억으로도, 추억으로도 남지 못했다.

 

기억에도 나이테가 있다면, 누구나의 어린 날에는 만화영화 몇 가지가 굵은 테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차에 달고 가 친구와 나눠 탄 필자의 SCOTT. 봉의산이 보이는 호숫가를 달렸다.

 

인사동에 가면 '토토의 오래된 물건'이라는 곳이 있다. 효용은 다하였으나 추억을 반추하게 하는 옛것들의 전시 공간이다.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골동품들은 보는 이와의 인연이 없기에 견문의 대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나온 날들을 함께 했던 물건을 마주치는 순간에는 그리움 섞인 반가움이 샘솟기 마련이다. 토토의 오래된 물건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야~ 이거...' 로 시작되는 회고록을 반사적으로 뇌리에 기술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의 토토를 패키지 시간여행이라 한다면, 춘천의 애니메이션박물관은 테마 시간여행이다. 성장기의 자아에 감동과 이입과 상상을 각인시키던 만화영화들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는 곳이다. 지난 삼월, 삼십 년 지기와 다녀온 춘천에는 미처 돌아서지 못한 겨울의 한기가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봄바람을 쐬겠다는 일념으로 투합한 우리는 의암댐에서 애니메이션박물관까지 자전거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가끔씩 인식 대상이 주는 익숙함을 존재의 가벼움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의 만화영화에 대한 얕은 식견을 일가견이라 믿으며 관람을 시작하였으나, 연대별로 구분 지어진 전시물의 면면 앞에서 이내 겸손해져야 했다.
70년에 태어나 2010년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적어도 그 40년 조금 더 되는 시공은 온전히 그에게 점유된 것인지 질문해 본다. 사회인으로서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의미가 있는 세계는 생명체로서의 그에게 주어진 수명보다 훨씬 좁은 범위로 한정되어야 한다. 70년대 중반 이전의 만화영화들은 필자와 인연이 없으며, 80년대 중반 이후의 것들은 필자에게 의미가 없듯이, 작품의 소재와 배경, 주제와 주인공, 그 밖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그를, 그것을, 그곳을 만나는 시점이다. '언제'라는 우연이 '왜'라는 당위를 초월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삶이다.
역사라는 큰 이름을 고사하고 추억이라 호명됨을 더 행복해할 소장품 가운데 '우주의 왕자 황금철인'과 '로보트 태권V 우주작전'의 백라이트 포스터 앞에서 걸음이 멈추었다. 태권V는 '강북의 어느 컴컴한'[각주:1] 극장 안에서 살아 있는 모습도 보았고, 근사하게 끼워 맞추기도 했으며, 임무를 망각했을 땐 조립을 해체하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었다. 지금은 디지털 신호로 변신[각주:2]한 채 필자의 서재에 대기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주의 왕자'는 누구인가? 
어쨌거나 그는 떠났으며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나그네임을 일깨워 준다. 창백하고 푸른 이 종착지에 무엇을 남겨야 할까? 인생을 하루에 빗댄다면, 늦어도 점심 식사를 마치기 전까지는 답을 해야 한다.  



  1. 19대 총선에서 논란이 된 망언을 패러디하였다. [본문으로]
  2. Y2K 소란에서 벗어난 2001년, 딴지일보는 2매의 VCD로 태권V를 부활시켰다.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와 함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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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북도 고창군에는 익히 알려지지 않은 박물관이 하나 있다. 고창고인돌박물관이 그곳으로서 2011년 5월 17일, 프랑스의 미슐랭 그린 가이드[각주:1]에 별 3개로 표기되는 만점으로 등재되며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은 박물관이다.

 한반도 전역과 고조선의 세력권에는 지구상 고인돌의 반 이상이 밀집[각주:2]되어 있으며 2000년 11월, 전북 고창, 전남 화순, 인천 강화 지역 고인돌이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고인돌이 흔한 이 땅에서는 홀대되기도 했지만, 지리적으로는 상당히 편중된 분포를 보이는 유적이 고인돌이다.

 지난 식목일에 먼 길을 달려 고창고인돌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한국의 고인돌Ⅰ- 포항의 고인돌 展」을 관람하였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별들 중에는 지구로부터 3000광년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것들도 많을 것이다. 선조들이 고인돌을 세우던 청동기 시대에 우주 멀리서 출발한 별빛이 지금 우리 곁을 스치고 있다는 신비로움은 고인돌이 가진 문화사적 의미에 피사체로서의 매력을 더하여 준다.

 거석을 축으로 시간과 인간이 교차하는 고창. 여행자의 몸을 이리저리 떠밀던 봄바람과 함께 4월의 선연한 기억으로 남았다.

 

 

 

 

고창고인돌박물관

 

 

 

 

수도권의 전시 공간들과는 달리 넉넉한 품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고인돌Ⅰ- 포항의 고인돌 展」은 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창작이자, 수양(修養)이다.

 

 

 

 

문명을 지휘하던 선조들의 자취가 말 없는 풍경으로 남았다.

 

 

 

 

  1. 방문 가치가 있는 문화유적과 관광지를 소개하는 세계적인 가이드북. 고창고인돌박물관 외에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경주박물관이 만점으로 등재되었다. 미슐랭이라는 프랑스식 발음은 낯설겠지만, MICHELIN 타이어는 익숙할 것이다. 미슐랭 가이드북은 타이어 마케팅의 산물이다. [본문으로]
  2. 4만여 기의 고인돌이 산재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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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아가 슥슥 그려준 별과 바다. 작은 우주에 대한 감사의 표시.


 

                                                      밤의 주인이되 어둠을 이기려 하지 않고
                                                      멀리 있으되 잊혀지지 않으며
                                                      구름에 가리되 변치 않는
                                                      바람이 흔들 때면 반짝이는 여유를 나누며
                                                      태양보다 뒤에 서되 초라하지 않고
                                                      홀로 있으나 무리 지으나 빛을 발하며
                                                      누구나 선망하되 함부로 할 수 없는
                                                      더없이 뜨거우나 상처주지 않는
                                                      세월을 이기나 떠나는 모습조차 아름다운
                                                      별과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2012년 4월 1일, 시로 화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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