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박물관은 봄이 흐르는 곳, 춘천에 있다.
한 시대의 문화는 대중의 관심과 인식에 상응하는 내력과 자취를 남기며,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의 가치관을 대변하고 창조의 방향을 제시한다.
박물관, 도서관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그 둘은 뿌리와 잎새의 관계이다.
창작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놓은 스톱모션 스튜디오
1968년 개봉된 '우주의 왕자 황금철인'. 2년 뒤 태어난 필자에게는 기억으로도, 추억으로도 남지 못했다.
기억에도 나이테가 있다면, 누구나의 어린 날에는 만화영화 몇 가지가 굵은 테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차에 달고 가 친구와 나눠 탄 필자의 SCOTT. 봉의산이 보이는 호숫가를 달렸다.
인사동에 가면 '토토의 오래된 물건'이라는 곳이 있다. 효용은 다하였으나 추억을 반추하게 하는 옛것들의 전시 공간이다. 세대를 건너 전해지는 골동품들은 보는 이와의 인연이 없기에 견문의 대상을 넘어서는 존재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나온 날들을 함께 했던 물건을 마주치는 순간에는 그리움 섞인 반가움이 샘솟기 마련이다. 토토의 오래된 물건에 들어서면 누구라도 '야~ 이거...' 로 시작되는 회고록을 반사적으로 뇌리에 기술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의 토토를 패키지 시간여행이라 한다면, 춘천의 애니메이션박물관은 테마 시간여행이다. 성장기의 자아에 감동과 이입과 상상을 각인시키던 만화영화들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는 곳이다. 지난 삼월, 삼십 년 지기와 다녀온 춘천에는 미처 돌아서지 못한 겨울의 한기가 머뭇거리고 있었지만, 봄바람을 쐬겠다는 일념으로 투합한 우리는 의암댐에서 애니메이션박물관까지 자전거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가끔씩 인식 대상이 주는 익숙함을 존재의 가벼움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의 만화영화에 대한 얕은 식견을 일가견이라 믿으며 관람을 시작하였으나, 연대별로 구분 지어진 전시물의 면면 앞에서 이내 겸손해져야 했다.
70년에 태어나 2010년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적어도 그 40년 조금 더 되는 시공은 온전히 그에게 점유된 것인지 질문해 본다. 사회인으로서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의미가 있는 세계는 생명체로서의 그에게 주어진 수명보다 훨씬 좁은 범위로 한정되어야 한다. 70년대 중반 이전의 만화영화들은 필자와 인연이 없으며, 80년대 중반 이후의 것들은 필자에게 의미가 없듯이, 작품의 소재와 배경, 주제와 주인공, 그 밖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그를, 그것을, 그곳을 만나는 시점이다. '언제'라는 우연이 '왜'라는 당위를 초월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삶이다.
역사라는 큰 이름을 고사하고 추억이라 호명됨을 더 행복해할 소장품 가운데 '우주의 왕자 황금철인'과 '로보트 태권V 우주작전'의 백라이트 포스터 앞에서 걸음이 멈추었다. 태권V는 '강북의 어느 컴컴한' 극장 안에서 살아 있는 모습도 보았고, 근사하게 끼워 맞추기도 했으며, 임무를 망각했을 땐 조립을 해체하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기도 하였었다. 지금은 디지털 신호로 변신 1한 채 필자의 서재에 대기 중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주의 왕자'는 누구인가? 2
어쨌거나 그는 떠났으며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나그네임을 일깨워 준다. 창백하고 푸른 이 종착지에 무엇을 남겨야 할까? 인생을 하루에 빗댄다면, 늦어도 점심 식사를 마치기 전까지는 답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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