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영월에 다녀왔다. 이십 년 새 일곱 번째이니 삼 년에 한 번꼴이다. 한동안 날이 따뜻해 응달에만 잔설이 희끗하였지만 태백선이 주는 깊고 먼 곳으로 가는 느낌은 여전하였다.

영월 하면 떠오르는 학부 선배가 있다. 정감록에 쓰여 있는 십승지지 즉, 난리 중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열 곳 중 하나가 영월인데 그런 산골짜기에서 자신이 왔노라고 자랑하곤 했다. M본부의 1박2일에서 말하는 '야생'이란 표현이 잘 어울리는 사람으로 백구두, 계란탕, 사다리 등 추억거리를 만들어 내는 특기가 있었다.

영월은 시간의 작품 고씨굴부터 절경 동강과 비경 서강, 단종의 아픔이 서린 청령포와 장릉, 새로운 랜드마크 별마로천문대까지 매력적인 환경, 역사, 문화가 짜임새 있게 갖춰진 흔히 않은 고장이다. 이번 여행은 12시에 청량리역을 출발해 22시에 되돌아오는 하루 여정이었으므로 고씨굴을 뺀 나머지 세 곳만 다녀왔다.

평범한 코스였으나 첫 방문지 청령포에서 돌아 나올 때는 갑가기 떠내려온 유빙에 갇히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30분이 넘도록 얼음을 깨며 길을 낸 끝에 손님들을 다시 태운 배 안에서 의외성이라는 여행의 진수에 감탄하는 여행객들과 보기보다 위협적이었던 유빙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2012년 12월 16일, 5D mark Ⅲ, EF 8-15mm f4L Fisheye USM @ 15mm

 

 

Acrossing the Seo River by icebreaker in Yeongwol-gun, Gangwon-do, Korea

 

Due to the cold and winds of the Seo River, floating ice gathered on the course of passenger boat. Accordingly passenger boat was forced to become a icebreaker. ^^

 

 

 

장릉을 거쳐 별마로천문대에 올랐다. 영월 시내에서 봉래산 정상의 천문대까지 택시를 타니 왕복 삼만 원의 규정 요금을 받았다. 한 시간쯤 머물겠다 하니 기사님이 내려가지 않고 기다려 주셨다. 삼만 원으로 택시를 대절하는 셈이다. 

플라네타리움과 같은 천문대 시설을 이용할 생각이 아니었으므로 곧바로 활공장으로 가 삼각대를 펼쳤다. 하지만, 아래 사진에 보이듯 돔 측면의 조명이 지나치게 밝아 촬영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심심산중의 천문대까지 와서 광해와 마주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으나 내내 옅은 구름에 가렸던 하늘에 별들이 나타나 줌으로써 기분 좋게 마침표를 찍은 여행이 되었다.       

 

 

 

 

2012년 12월 16일, 5D mark Ⅲ, EF 8-15mm f4L Fisheye USM @ 8mm

 

 

돔 위의 목성을 주인공 삼아 해발 799.8m 봉래산 정상에 설치된 모든 인공물들을 담았다. 전천을 찍을 수 있는 화각이다 보니 황소부터 페르세우스, 카시오페이아, 세페우스, 안드로메다, 페가수스 등 이름 난 별자리들이 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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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와 느낌, 필자가 좋아하는 낱말들이다. 무엇을 하건 이 두 가지가 따라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재미와 느낌은 고달픔의 대가이기도 하다. 땀과 극기가 Runner's high를 선사하듯, 산야에서 밤을 지새우며 담아낸 사진 한 장은 서리를 이고 피어난 한 송이 국화와도 같이 그윽한 기쁨을 준다.  

 취미로서는 안락하지 않은 부류에 속하는 별사진의 매력은 무엇일까? 사진기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웅대한 피사체로서의 천체와 그것들의 운동, 별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궤적은 인간의 유한함을 각성시키고 빠져들게 만든다. 이에 더하여 또 다른 거대 운동체 두 가지와 씨름하며 싹트는 미운 정, 고운 정은 중독 고착제로 작용하며 제2의 매력 요소가 된다. 그 두 번째 상대란 달과 구름이다. 자체로 훌륭한 피사체이기도 하지만, 별을 위해서라면 피할수록 이로운 존재들로서 이들과 숨바꼭질하는 과정이 곧 별사진 이력이라고 해도 될 만큼 질긴 인연을 이어 가게 된다.         

 11월 25일도 그런 날이었다. 천리안 위성 영상에 나타난 풍향이 불안하였고 03시에 달이 지므로 여유로운 촬영은 어려울 것 같았다. 하지만, 구름 없는 겨울 하늘에 이끌려 마음 속에 두었던 장소로 출발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한밤의 한반도 중서부를 필자의 차량이 이동중이다.

 

 

 

 

 

 

 

목적지가 머지 않았다.

 

 

 

 

 

 

 

도착했다. 구름도 도착했다.

 

 

 

 

 

 

 

 기다리면 잠시 하늘이 열릴 때가 있는데 끝내 안 그런 날도 있다. 구름떼가 중부지방을 지나는 내내 그 아래에 필자가 서 있었다. 논두렁 위에 덩그러니 있으니 영화 '살인의 추억'이 떠올랐다.

 

 

 

 

 

 

 

우주에서 관측된 위 구름을 같은 시각 지상에서 촬영한 것이 아래 사진이다.

 

 

 

 

 

 

 

5D mark Ⅲ, EF 24mm F1.4L Ⅱ

 

 

 

 삼각대를 접으려는 무렵, 서광이 차오르는 동녘 구름 사이로 금성이 눈에 띄였다. 때마침 아침거리를 찾는 기러기들도 여기저기서 날아올라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상대에게 필자의 구상이 전해질 리 만무하다. 새벽빛이 가시도록 다시 나오지 않는 금성과 24mm 화각 밖에서만 오가는 기러기들... 영하의 냉기 속에 찾아온 마지막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위 사진 제목이 '사일리지와 팔등신 인공별'에 머물게 된 까닭이다. 하지만, 만족한다. 거대 운동체들을 상대하는 재미와 느낌은 대체재를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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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 mark Ⅲ, EF 17-40mm F4L

 

 

 

 

5D mark Ⅲ, EF 17-40mm F4L

 

 

 

나로호 3차 발사가 또다시 연기되었다. 어쩌면 올해 안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발사대에 세우는 기립 작업의 완료조차 '성공'이라는 표현을 빌어 보도될 만큼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나로호다. 10월 26일에는 흐루니체프사의 어댑터 블록이, 11월 29일에는 KARI의 추력방향제어기가 문제 되었다. ICAO에 발사 일정까지 통보된 상황에서 매듭을 짓지 못하니 아쉬움이 크다.

위 사진은 대전에 있는 KARI,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전경[각주:1]이다. 나로호 계획이 추진된 이래 말 그대로 가시방석에 앉아 있었을 연구원들을 생각해 본다. 다수의 연구소와 발사장, 화려한 이력을 갖춘 NASA나 그의 충실한 모방자 JAXA에 비하기엔 아직 미력하지만, 한국의 우주 진출 의지와 방법을 구현하는 소중한 토대가 바로 그들이다.

우리나라는 2021년을 목표로 하여 2010년부터 나로호의 3배에 이르는 1조5000여억원 규모의 한국형 발사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기술로 아리랑 위성 규모의 1.5t급 위성을 600∼800km 저궤도에 안착시키는 3단 로켓 개발이 목표다. 어려운 일을 자원한 이들에게 호랑이의 순발력보다는 곰의 지구력을 선물하고 싶다. 

일희일비하는 정서로는 하늘을 보아도 별을 딸 수 없다. 기다려 주고 격려해 주는 응원 안에서, 앞으로의 여정에 수많은 이정표와 커다란 느낌표가 들어서기를 기원한다.

 

 

  

 

  1. 지난 여름, 사진을 찍으며 관계자들로부터 가벼운 제지를 받았다. 보다 열린 사회를 꿈꾼다. 아니, 출세해야 하나? ^^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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