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불의 추억

별표 원고지 2013. 3. 14. 23:41

 

 

 

 

 

Monopoly night sky edition은 결국 반품되었다. 'Hold on review'라는 표현이 준 기대는 신기루였다. 오늘 아침, i-parcel을 제치고 Amazon에서 메일이 왔음을 확인하는 순간 희망이 사라졌다. 우리라면 '환불 처리 중'이라고 할 것을 미국인들은 '검토 중'이라 하니, 외국인은 생김새만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물품이 배송사로부터 반송되면 그 주문은 취소된다. 환불이 진행되며 구매하려면 새로이 주문해야 한다. 필자의 불찰이며 관계자들이 해 왔고 해야 할 수고를 생각하면 불평할 처지가 못 된다. 우주 투자에 따르는 난관이라고 받아들이겠다.

세상의 흐름을 타는 것은 세상살이의 기본이다. 바뀐 인심과 개정된 법규를 몰라 겪는 낭패를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게 된다. 변화에 둔감해서는 함께 흘러가기 어렵다. 이번 Monopoly 사건은 작은 일이지만, 속도감 있는 세상에서 경험에만 의존하다간 시대에 뒤떨어지게 됨을 가르쳐 주었다.  

본의 아니게 국제 사기를 친 적이 있다. 이 또한 Amazon과 얽힌 일화이다. 히딩크 신드롬이 여전하던 2005년, 두 장의 CD를 amazon에 주문했다. 하나는 Nana Mouskouri의 Roses & Sunshine 앨범, 다른 하나는 Alan Parsons Project의 Best였다. 그녀의 Sweet surrender[각주:1]와 그들의 Eye in the sky[각주:2]를 듣고 싶었으나 국내에선 절판 상태였으며 특히 전자는 중고로도 찾을 수가 없었다. 판매자가 달랐기에 따로 배송이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나나 무스꾸리 CD는 오지를 않았다. 정치인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배달 사고'가 난 것이다. 할 수 없이 환불을 요청하였고 소중한 외화를 돌려받았다.

TV 연속극도 아니면서 잊을 만하니 일이 생겼다. 일 년이 지날 무렵 나타난 그녀가 직장 책상 위에 떡하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를 거쳐 온 걸까? SF 호러 중에 'Event Horizon'이라는 수작이 있다. 태양계 탐사 임무를 맡은 우주선이 해왕성 부근에서 사라진다. 7년 후 나타난 우주선은 스스로가 악령이 되어 있었다. Event Horizon이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겨진다. 우주선이 만신창이가 되었듯, CD도 겉포장은 상태가 험했다. 하지만, 케이스가 깨져 온들 불만이 있을 리 없다. 그 CD를 꺼내 들 때면 환불 요청 사유에 입력했던 'I never received my order.'가 아른거린다.     

 

 

 

 

  1. 고3 때, 나나 무스꾸리가 방한했다. TV에 나와 그녀가 들려주었던 이 곡을 학부 시절 즐겨 들었다. 학생에겐 워크맨이 최고의 오디오였기에 Tape로는 가지고 있었다. [본문으로]
  2. 음악하는 형을 가진, 음악 좋아하는 친구 집에서 열한 살 때 처음 듣고 깊이 각인된 곡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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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3일, 아마존에 monopoly night sky edition을 주문했다는 글을 올렸었다. 배송 방법을 amazon global expedited shipping으로 선택하면 i-parcel로 발송되는데, 예전에는 별도의 절차 없이 배송과 수령이 이뤄졌기에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배송예정일이 훌쩍 지나고 나니 확인을 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위는 i-parcel 배송추적 화면이며 2월 14일 이후로 배송이 보류된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중요한 조치를 빠뜨렸기 때문이다. 밑에서 세 번째 문장에 안내되어 있다.

Your[각주:1] shipment is destined for a country that requires information prior to arrival. Please contact trackmyparcel@i-parcel.com for further information.

i-parcel에 이메일 주소를 등록하면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링크가 온다. 회신하지 않으면 배송이 안 되며 이는 2010년 2월 22일부로 전자상거래물품 통관관리가 강화된 까닭이라고 한다.[각주:2] 이제서야 이메일 주소를 등록한 후, 보다 빠른 처리를 위해 i-parcel로 다음과 같은 메일도 보냈다. 여차하면 반품될 위기 상황이다.

In reference to Tracking Number ***, please send me an active link to provide my resident registration number. My e-mail address is ***@***.***.

이제 다시 시작이다. '이등병의 편지'가 들려오는 듯 하다. ㅜㅜ

 



 

  1. 규모 있는 업체의 홈페이지에도 오자가 보이곤 한다. [본문으로]
  2. 2011년 12월, ebay에서 렌즈 컨버터를 구입했을 때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받지 않았다. 발송 주체(업체, 개인) 및 물품 성격(상품, 선물)에 따른 차이이다. 운송장에 'gift'라고 써 보내는 경우, 상거래물품이 아닌 것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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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을 촬영하고 싶었다. 헤일밥이나 하쿠타케와 같이 경이로운 대상을 그냥 보낸 것이 지금껏 아쉬웠기에 마음에 드는 혜성 사진을 찍을 수 있기를 바라 왔다. 기회가 온다고 하여 늘 다가갈 수는 없는 법이지만, 두 번이나 펼쳐지는 2013년의 장관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먼저 찾아온 Pan-STARRS[각주:1]의 근일점에 맞춰 10일, 11일 연이틀 등산을 했다. '유사 혜성' 하나 담는데 그치고 말았지만, 필자의 사진 지평을 넓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아는 것도 부족하고 노하우도 없었지만, 나름의 방법들을 동원했다. 혜성이 육안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으므로 허블망원경이 HUDF를 찍은 것처럼 지평선 따라 '허공'을 촬영하거나, 망원렌즈를 망원경 삼아 5배율, 10배율 라이브뷰로 예상 지점을 훑어보는 식이었다.

결과는 아래와 같다. 지평선 가까이 옅은 구름층이 없고 산이 더 낮았다면 Pan-STARRS를 포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5D Mark Ⅲ, EF 70-300mm F4-5.6L IS USM

 

 

 

 

@ 300mm

 

 

혜성인가?! 일몰 후 희뿌연 무언가가 카메라에 잡혔다.

 

 

 

 

부분 확대

 

 

 

태양 반대 방향으로 뻗은 꼬리, 부채꼴, 출현 시각 등 혜성으로 보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혜성을 찍는구나! 별들을 상대할 때와는 또 다른 희열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마음을 추스리고 나니 예정된 고도보다 높은 위치와 확연하게 갈라진 형태로 보아 비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화각을 조절해 가며 몇 장 더 촬영하는 사이 조금씩 멀어지던 혜성은 끝내 호를 그리며 방향을 틀었다. 음... 긴장감이 아쉬움으로 바뀌며 Pan-STARRS에게 바친 이틀도 막을 내렸다. 오르트 구름에서 지구 가까이 날아오는 기나긴 세월에 비하면 순간에 불과하지만, 오래도록 추억될 시간을 만들었다. 다음 달 초에는 안드로메다 은하에 근접한다니 진한 인연 이어 가고 싶다.

 

 

 

 

  1. 공식명은 C/2011 L4이다. 2011년 발견된 비주기 혜성이다. 하와이 마우이 섬 할레아칼라 산의 Pan-STARRS 망원경으로 발견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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