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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21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네가 해내지 못한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애증이 교차하는 고교 시절, 중요한 도전을 앞둔 필자에게 담임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다. 그 후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이 관용구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이를 때 쓰는 표현이지만, 해가 동쪽에서 뜬다는 당연한 사실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할 이야기가 많다.

우선, 해는 늘 정동에서 뜨지 않는다. 여름에는 북동쪽으로, 겨울에는 남동쪽으로 치우쳐 뜬다. 이로써 남중고도에 차이가 생기고, 계절에 따라 낮과 밤의 길이가 달라지는 까닭이 된다. 일상과 상관 없는 천문 현상이라고 여길 이도 있겠으나, 작게는 여름 볕 한 시간을 더 쓰기 위해 서머타임제를 시행하는 국가들의 사례나, 크게는 전지구적 환경이 일조량에 기반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둘째, 해는 서쪽에서 뜨기도 한다. 일출몰은 지구의 자전에 의한 현상이다. 따라서, 자전 속도를 거스를 수 있다면 서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 적도를 기준으로 지구의 자전 속도는 시속 약 1,670km이므로, 이보다 빨리 서쪽을 향해 비행한다면 해는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겉보기 일출'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이 현상은 적도보다 단면적이 좁은 고위도를 비행[각주:1]할 때, 제트 기류라는 강한 편서풍을 피할 수 있을 때[각주:2]와 같이 몇 가지 조건이 맞으면 경험할 수 있다.

기다릴 대상이 있을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반가운 소식, 특별한 날,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이 세 가지 기쁨을 이야기하는 영화에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을 빼놓을 수 없다. 인정 없는 세월이 배우 임창정으로부터 풋풋함이라는 시한(時限) 매력을 거둬 가기 전의 영화다. '만남의 광장'에서 삼청교육대를 선택하는 순박한 기회주의나 '시실리 2km'에서의 마음 여린 살기(殺氣)를 통해 표현되는 페이소스는 임창정만이 살릴 수 있으며, 필자가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남성판이랄 수 있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 여느 아류와 다른 점은 '공주' 고소영이 내려 놓아야 하는 것에 있다. 사회적 관계에서, 선택에 지불해야 할 대가가 없는 왕자들과는 달리 공주는 해야할 일이 있다. 작게는 내려서는 것이고, 크게는 자아를 허물어야 한다. 이를 위한 망설임과 어려움을 함축한 문구가 이 영화의 제목이다. 

삶이라는 여정에는 '내일은 해가 뜬다'고 되뇌어야 하는 기간도 있고, '해가 서쪽에서 뜨길' 소망해야 하는 구간도 있다. 전자 속에서나 후자 안에서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진심으로 바라고, 진심으로 행하며, 진심으로 상대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은 겨울 하나 남은 지금, 되풀이되는 일출과 일몰 속에서 이글거리는 오메가와 붉은 노을만 찾을 것이 아니라 함께 뜨고 지는 盡人事待天命의 의미를 헤아리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곡 하나 하나가 부드러이 울리는 OST 가운데 누구나의 마음과 교집합을 이루어 줄 5번 트랙에서 Ctrl+T 키를 누른다.

 


   

 

 

 

 

 

 

 

 

 

임창정 주연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OST

 

 

 

 

 

  1. 전투기는 속도가 빠르나 작전 공역을 넘어서는 일이 없으므로, 시속 900km 정도로 비행하는 여객기면 충분하다. [본문으로]
  2. 겨울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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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삼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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